규정은 대개 사고 뒤에 쓰였습니다
1906년 미국은 순수식품의약품법(Pure Food and Drug Act)을 제정했습니다. 불량하거나 허위로 표시된 식품과 의약품의 주간(州間) 거래를 연방 차원에서 처음 규제한 법입니다. 그때까지 약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은 시판 전에 안전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공백은 1937년에 드러났습니다. 미국에서 한 제약사가 설파닐아미드를 액상으로 만들면서 독성이 있는 용매를 사용했고,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성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녹이기 위해 선택한 부형제, 그리고 완제품의 안전성을 시판 전에 확인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이 없었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이듬해 제정된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FD&C Act, 1938)은 의약품에 대해 시판 전 안전성 입증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GMP 조항을 읽다 보면 지나치게 세밀해 보이는 규정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조항 대부분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의 요약입니다. 세부 조항이 번거롭게 느껴질 때에도, 그 조항이 어떤 사건의 결론인지는 대체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GMP가 실제로 관리하는 것
GMP를 깨끗한 공장으로 이해하는 것은 절반만 맞습니다. 청결은 결과이고, GMP의 본체는 재현성을 담보하는 문서와 관리의 체계입니다. 좋은 약을 한 번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어려운 것은 3년 뒤, 다른 작업자가, 다른 원료 로트로, 같은 약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체계는 네 개의 축으로 서 있습니다. 문서화 — 기록되지 않은 작업은 수행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밸리데이션 — 공정이 의도한 결과를 반복해서 낸다는 사실을 생산 전에 입증합니다. 변경관리 — 원료 공급처, 설비, 시험법의 변경을 사전에 평가하고 승인합니다. 그리고 일탈 관리 — 계획에서 벗어난 일을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원인을 추적하고, 조치를 검증합니다.
ICH Q10은 이 요소들을 하나의 의약품 품질시스템으로 묶고, ICH Q9의 품질위험관리와 지식관리를 그 운영 원리로 둡니다. 개발 단계의 설계 개념(ICH Q8)에서 상업 생산과 단종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같은 논리로 관리한다는 관점입니다.
밸리데이션은 오랫동안 연속 3개 로트로 공정성능적격성을 확인하는 방식이 관행으로 쓰였고, 지금은 공정설계 — 공정성능적격성(PPQ) — 지속적 공정확인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관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3 로트는 규정된 숫자라기보다 변동을 관찰하기 위한 최소 근거이며, 근거는 공정의 위험도에 따라 설정됩니다. 일탈은 중대도에 따라 분류하고 근본원인분석을 거쳐 시정·예방조치(CAPA)로 연결하며, 효과성 검증까지 끝나야 종결됩니다.
한국의 기준선: PIC/S 이전과 이후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대체로 미국의 계보입니다. 그런데 규정이 나라마다 따로 자라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같은 공장을 두고 열 개 나라가 열 번 실사를 나오고, 그 열 개의 기준이 서로 다릅니다. PIC/S(의약품 실사 상호협력 기구)는 그 문제를 규제기관들이 공동으로 풀기 위한 체계입니다. 1970년의 PIC 협약에서 출발해 1995년 현재의 형태가 되었고, 회원 당국은 같은 GMP 가이드를 기준으로 삼고 실사 결과와 정보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형태로 교환합니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7월 1일 PIC/S에 가입했습니다. 가입은 서류 한 장을 받는 일이 아니라 국내 GMP 기준을 PIC/S GMP 가이드에 맞춰 정비하고, 그 기준으로 실사를 운영할 수 있음을 회원 당국으로부터 확인받는 절차입니다. 그 과정에서 품질위험관리, 데이터 완전성, 연간 제품 품질 평가, 생애주기 관점의 밸리데이션처럼 앞 절에서 설명한 요소들이 국내 기준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제약사에는 2014년을 기준으로 한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 이전부터 생산해 온 회사는 기존 설비와 문서 체계를 새 기준에 맞춰 정비해야 했고, 지금도 이전 기준으로 허가받아 관리해 온 품목과 새 기준으로 만든 품목을 함께 안고 갑니다. 그 이후에 공장을 지은 회사는 처음부터 하나의 기준으로 설계했습니다. 중헌제약은 2014년에 출범해 2016년 청주 공장 GMP 인증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만든 모든 제품은 예외 없이 후자에 속합니다. 업력이 짧다는 사실이 여기서는 유리하게 작동합니다.
다만 이 선을 과장해서 읽어서는 안 됩니다. PIC/S 가입은 규제기관의 실사 체계에 관한 사실이지 개별 제품의 유효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어느 기준으로 만들었는지가 그 약이 효과가 있는지를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품목허가가 별도 절차로 판단합니다.
PIC/S GMP 가이드는 본문 PE 009와 부속서(Annex)로 구성되며, 무균 제조는 Annex 1이 다룹니다. 회원 당국 사이에는 실사 보고서 교환과 상호 신뢰 체계가 작동하지만, 이것이 자동적인 상호인정협정(MRA)과 같지는 않습니다 — 수입국이 자체 실사를 요구할 수 있는지는 국가별 제도에 따릅니다. 국내 GMP 정비 과정에서 도입된 요소로는 품질위험관리(ICH Q9 계열), 데이터 완전성 요건(ALCOA+), 연간 제품 품질 평가(APQR/PQR), 그리고 3배치 관행에서 공정설계–PPQ–지속적 공정확인으로 넓어진 밸리데이션 관점이 있습니다.
주사제와 경구는 다른 문법을 씁니다
경구고형제 공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교차오염입니다. 분말을 다루는 공정에서는 분진이 발생하고, 분진은 공기와 사람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래서 구역을 분리하고, 압력과 기류를 설계하고, 설비 세척 절차를 밸리데이션하며, 필요한 경우 전용 설비를 둡니다.
주사제는 다른 논리를 요구합니다. 최종 제품에 미생물이 없어야 하므로, 청정도 등급을 나눈 구역을 만들고 그 사이에 차압을 유지해 공기가 항상 더 깨끗한 쪽에서 덜 깨끗한 쪽으로 흐르게 합니다. 부유입자와 미생물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제품과 접촉하는 물은 주사용수 등급으로 관리합니다. 프리필드 시린지처럼 용기 자체가 최종 형태인 제형에서는 용기·마개 시스템의 무결성이 품질의 일부가 됩니다.
두 공정을 한 사업장에서 함께 운영하려면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오염 관리 논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청주 공장에 경구고형제 설비와 프리필드 시린지 설비를 함께 두고, 의약품 GMP와 의료기기 GMP를 한 지붕 아래에서 운영합니다.
청정실은 차압·부유입자·표면 및 부유 미생물 모니터링으로 상태를 유지합니다. 세척 밸리데이션의 잔류 허용 기준은 임의의 관행값이 아니라 독성학적 근거에 기반한 노출 한도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재의 접근입니다.
두 개의 품질 시스템, 하나의 태도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문서의 구조도, 용어도 다릅니다. 의약품이 공정과 규격 중심의 언어를 쓴다면, 의료기기는 설계관리와 위험관리, 시판 후 감시를 축으로 하는 언어를 씁니다. ISO 13485:2016은 의료기기 품질경영시스템의 국제 표준이고, MDSAP은 복수 국가의 규제당국이 인정하는 단일 심사 프로그램입니다. 유럽 시장에서는 EU MDR이 그 요구를 규정합니다.
두 체계를 함께 운영하는 일은 서류가 두 배가 되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같은 설비, 같은 인력, 같은 공기를 두 개의 다른 기준으로 동시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구하는 태도는 결국 하나로 수렴합니다. 무엇을, 왜 그렇게 했는지 기록으로 남길 것.
심사자가 가장 먼저 보는 것
경험 있는 심사자는 인증서를 오래 보지 않습니다. 대신 일탈 기록과 변경 이력,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을 봅니다. 일탈이 한 건도 없는 공장은 완벽한 공장이라기보다 기록하지 않는 공장일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신뢰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을 때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품질을 설명할 때 보유한 인증의 목록보다 일탈과 변경을 처리하는 방식을 먼저 제시합니다.
참고 자료
- 01Pure Food and Drug Act (United States, 1906); 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United States, 1938) — 공개된 입법 사실.
- 02미국 식품의약국(FDA), “Sulfanilamide Disaster” — 1937년 엘릭서 설파닐아미드 사건에 관한 공개 역사 기록.
- 03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관련 규정 및 가이드라인.
- 04PIC/S(Pharmaceutical Inspection Co-operation Scheme) — PE 009 GMP 가이드 및 회원 현황.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가입일(2014년 7월 1일)은 공개된 사실입니다.
- 05ICH Q8(R2) Pharmaceutical Development; ICH Q9 Quality Risk Management; ICH Q10 Pharmaceutical Quality System.
- 06WHO Good Manufacturing Practices for Pharmaceutical Products.
- 07ISO 13485:2016 Medical devices — Quality management systems; MDSAP(Medical Device Single Audit Program); Regulation (EU) 2017/745 (EU M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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